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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마을 이야기(Japan)/나가사키(長崎)성지순례

[나가사키] 결코 잊어서는 안될 역사 - 나가사키 원폭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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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At 11:02 a.m. on August 9, 1945,
an atomic bomb was dropped over the city of Nagasaki.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일본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역사로 기억되겠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기억의 형태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몇 몇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원자폭탄에 대한 기억을 일본의 만행에 대한 하늘의 처벌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생각하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픈 인류의 역사이다.

<학생과 선생님 조형물>



폭투하 후 희생된 학생들과 선생님을 기억하기 위해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이다. 원폭투하시 2,000여명의 학생과 선생님이 희생되었다. 물론 그 이후 방사선과 후유증으로 몇 주, 몇 달 사이에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이 이야기는 일본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다시는 결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때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만든 것이다.  



  

<원폭 자료관과 평화공원 안내문>


절하게도 한글로 된 팜플렛과 안내문이 마련되어 있다. 나가사키 원폭투하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평화>


폭자료관 입구 평화를 담은 염원이 있다.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10년이 지난 후 증세가 나타난 사다꼬라는 한 소녀는 천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면 자신의 병이 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종이학을 접었지만 15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가사키 시민들은 종이학을 접어 사다꼬에게 보냈고 현재 이 종이학은 핵무기와 전쟁을 반대하는 상징으로 평화를 염원하는 나가사키 시민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가사키 어디서든 색색의 종이학을 쉽게 볼 수 있다. 나가사키의 상징이 된 듯하다. 호텔에도, 작은 가게에도, 성당 안에도 종이학이 있다.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길>

 

<원폭투하 후의 참상을 찍은 당시 사진>

생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참혹한 사진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리고 가슴이 떨리는 이 모습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 하늘의 심판이 아니라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인간의 오만이 만들어낸 참상이다. 

<자료관 내 전시품들 - 사진은 '일본여행'카페에서 퍼옴>

(전시관 내부에는 사진금지라고 되어 있어 찍지 못했으나 인터넷에 구한 것이 있어 함께 실었습니다.)


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은 올리지 않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참상을 알리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폭탄이 투하된 11시 2분에 멈춰있는 시계, 원폭투하 후 무너진 우라카미 성당의 잔해,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패트맨)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타서 녹아버린 묵주와 여러 잔해와 함께 뭉쳐버린 십자가... 상상하지 못할 파괴력이었다. 원자폭탄은 핵분열을 통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 원자폭탄은 단순히 폭탄이 터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폭풍이 일고, 그 다음 참을 수 없는 열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무서운 방사선이 나오면서 3단계의 피해를 준다.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고스란히 이 피해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두개골이 붙어버린 철모>



<원폭의 피해를 담은 사진>

위 참상을 담은 사진부터 여기까지는 퍼온 사진

 

<자료관에서 평화공원으로 가는 길에 만들어진 수로>


가사키 시내에는 물을 이용한 조형물이 많다. 그 이유는 원폭의 피해자들이 죽어가면서 갈망한 '물'을 담아 그들을 위로하는 의미라고 했다. 원폭의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참기힘든 것이 갈증인데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나오는 엄청난 열기로 주변 물기가 다 말라버려 먹을 수 있는 물이 없었단다. 그래서 갈증에 힘들어하며 죽어간 피해자들의 넋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수로와 물장식을 많이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원폭 후 피해자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나가이 다카시박사의 책에서 접한적이 있지만 여기에서 이렇게 눈으로보고나니 내가 피해자가 된듯한 느낌이 든다. 절대 비교할 수 없겠지만...  


<평화공원 내 조각공원>


이것 역시 아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것이다.
아이들의 손과 발에 평화를 바라는 종이학과 편지들이 달려있다.

 

 

 <원폭자료관에서 폭심지로 향하는 길목의 여러 조각상들>

 

<평화심벌??>                                             <기도하는 소녀>


에 있는 것의 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지만 이것도 나가사키가 전세계에서 원폭의 마지막 피해지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1983년 그리스에서 받은 것이라고 한 것 같다. 역시 많은 피해를 당한 아이들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다짐하자는 것 일본과 15개국에서 함께 세웠다고 한다.

 


 <나가사키 한국인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제시대에 징병온 한국인들이 원폭으로 인해 사망한 것을 추모하는 추모비로 1976년 세워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다녀간 사람이 두고 간 듯한 한반도 지도가 있다.

  

<원자폭심지>

 나가사키 원자폭탄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


해 12월까지 약 74,000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75,000명이 상처로 힘들어했다. 폭심지 주변으로부터 2.5km 반경 내가 완전히 황폐화 되었다고 한다.  옆에 보이는 것은 우라카미 성당의 기둥이다. 우라카미 성당은 폭심지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폭격당시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 중이었고, 특히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많은 인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그때 무너진 것을 여기로 옮겨 놓았다.

 

주알이었나? 나가사키의 노래였나? 원폭이 터진 후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몇 일이 지난 후에야 집으로 갈 수 있었던 나가이 다카시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내가 항상 있었던 부엌에 아내가 늘 가지고 다니면서 기도하던 묵주의 십자가가 녹아 있는 것을 보고 아내인줄 알았다는 구절이 기억났다. 그걸 바가지에 담아 돌아가면서 '미안해요~ 미안해요~'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던... 너무 끔찍하게 읽었던 그 구절이 더 끔찍하게 기억이 난다.

 

<모자상>


자상 아래에는 1945년 9월 9일 11시 2분이라고 적혀있다. 그 순간을 잊지말자는 의미이겠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는 역시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어머니 치마에 있는 꽃도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겠지.

 

<평화상>

화공원의 상징이 된 평화상이다. 원폭이 터진 뒤 10년이 지난 1955년 세워진 것이다. 치켜세우고 있는 오른손은 원자무기들의 위협을 상징하고 수평으로 펴고 있는 왼손은 평화를 상징하고 얼굴은 눈을 감고 원폭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란다. 실제로 보기 전엔 엄청 큰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그리 크진 않았다.

리나라의 해방과 일본의 절망.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 상반된 역사의 흔적들 속에서 엄청나게 무서운 것이었음을 그리고 너무나 철없는 억지였음을 느끼면서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절망의 위를 희망으로 엎어 재건에 성공한 모습도 그들의 모습이었다. 희생자들의 모습, 무너진 건물과 시가지, 이런 흔적들 속에서도 단연 눈길이 가는 것은 평화를 염원하는 나가사키 사람들이 고이 접은 종이학과 나가사키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온몸을 바친 나가이 다가시의 행적이다. 



나가이 다가시에 대한 것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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