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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실린 여행기

손 때 가득한 문화거리, 골목투어 4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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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반을 지났다. 적당히 쉼표도 찍었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는 찰나, 괜히 억울하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완전군장으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이 때, 세상은 어찌도 이리 찬란하단 말인가.

 

 

 

 

결국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뜨거운 태양은 아직도 그 위세가 대단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법. 골목을 휘감는 바람과 작은 틈새로 비치는 하늘은 이미 가을의 향기를 품었다. 늦여름의 눅눅함을 내려놓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가을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한다.

 

 

 

 

여행의 참 재미는 출발하기 전이라고 했던가. 루트를 고민하고 일정을 짜고, 필요한 짐을 꾸리면서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깜짝 놀랄 일이 생길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일이다. 하지만 3번의 대구 골목기행을 통해 즉흥여행의 참맛을 알아버렸다. 무거운 짐가방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 익숙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낯설음이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쾌감으로 다가왔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따라 음악이 흐르는 곳으로, 물감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곳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손 때 가득한 문화거리, 골목투어 4코스

 


 

 

 

 

<이미지 출처: http://gu.jung.daegu.kr/alley/sub01/sub04.html(대구중구청 골목투어 안내)>

 

 

대구골목투어 4코스 ‘삼덕봉산문화길’은 5km에 육박하는 골목투어 가운데 가장 긴 코스를 가졌다. 그러니 4코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운동화 끈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 심장을 조금 말랑말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어렵다고? 그렇다 해도 걱정할 건 없다. 굳은살이 배인 마음이라도 4코스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달콤하게 녹아내릴테니 말이다.

 

 

 

 

골목투어 4코스는 대구 중심에 자리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시작으로 삼덕문화거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 봉산문화거리, 대구향교, 그리고 건들바위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지금까지의  코스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면 4코스는 조금 비켜난 길에 있어 외톨이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 가을을 만끽하기에 가장 제격인 코스라 자부한다.


4코스의 또 다른 이름은 ‘문화거리’이다.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머리가 아파온다. 우리에게 문화는 너무 멀리 있는 당신이었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너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광범위함과 부담스러움이 오히려 고마울 때가 있다. 내게 보여지는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말해버리면 그것 또한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또 이것이 바로 4코스가 가진 매력이니까.
세상이 가진 ‘문화’라는 틀을 버리고 문화의 거리로 뛰어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것’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도시가 품은 푸른빛 세상

 


 

 

 

 

 

 

한 도시의 발전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도로의 수, 규모, 그 사이를 오가는 자동차의 수 등을 말할 때가 있었다. 때문에 많은 도시의 땅들은 한참동안 몸살을 앓아야했다. 그러나 그런 기준도 세월이 흐르며 달라져 이제는 녹지의 면적이 그 도시의 삶의 질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었다. 삭막했던 대구 도심이 푸른 옷을 입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덕분에 땅도, 사람도, 공기도. 이제는 좀 더 편하게 숨 쉴 수 있게 되었으니 모두에게 축복인 셈이다.

 

 

 

 

 

골목투어 4코스의 시작지점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대구가 자랑하는 푸른 빛 세상이다. 우리도 이제 유럽의 많은 나라들처럼 풀밭에서 책을 읽고, 소담스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흘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더욱이 이곳은 나라를 살리고자했던 자주적 시민운동을 기념하는 곳이라 역사적으로 뜻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도 다양한 시민축제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동심으로 초대하는 거리 미술관

 


 

 

 

 

 

 

 

작은 지도를 들고 삼덕동 문화거리를 찾아 헤맨지 10여분, 그곳에 있다는 문화거리는 당최 보일 생각을 않는다. 우리가 책에서 배운 문화란 찬란한 옷을 입고, 고고한 자태로 유리관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문화는 항상 올려다봐야만 보이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이곳의 문화가 눈에 보일리 만무하다. 삼덕동 문화거리는 일상적인 눈높이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설마 진짜 여기야?”라며 조금은 실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함이 남았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다 마주친 마고재와 빛살미술관에선 이야기 속 세상과 만났다. 어디 한군데 닮은 곳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를 떠올리기도 했다. 멈춰있는 자전거 체인에 기름칠을 하면 금방이라도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줄 것 같다. 그러면 동화속의 왕자님도 만나고, 어린 시절 울고 웃겼던 만화속 주인공도 만날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일곱 살로 돌아간 나를 만나게 된다. 아마도 내 속에서 잠자고 있던 동심이 이곳에 남아있는 그것과 어딘가에서 맞닿았나 보다.

 

 


 

  영원히 남을 음유가객, 김광석 & 방천시장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을 거쳐간 사람들 중 이름 석자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철없는 어린 시절 6년을 살았다는 이곳에 ‘김광석’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당당히 내걸었다. 서른 즈음에 먼지가 되어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사라진 그. 덕분에 그는 영원한 청춘으로 남았다. 거리에선 지금도 하염없이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우리의 기억 속엔 그의 옛 모습만 남았다. 가을이면 우수에 젖은 그의 눈빛과 목소리가 짙은 그림자가 되어 거리에 드리운다.

 

 

 

 

 

김광석길과 방천시장의 만남은 ‘문전성시’라는 한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사라져가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장에 예술을 접목시켰고, 덕분에 상인들은 숨구멍을 찾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곳은 다시 예술가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었다.

 

 

 

 

 

 

김광석길의 낮과 밤은 확연히 다르다. 낮에는 김광석을 닮고자 고군분투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무대를 만날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공방에서 갓 제작한 아기자기한 핸드메이드 소품들은 발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겨우 돌아선 골목길 모퉁이에선 달콤한 추억의 먹거리들이 손짓을 한다. 이 즈음되면 못이기는 척 한번은 멈춰줘야 한다. 하지만 그 때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선택의 양 갈래 길에서 언제나처럼 우물쭈물하는 나. 고심 끝에 선택한 하나, 그리고 남겨둔 것 하나. 왠지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재회의 끈을 놓아둔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세상에 지친 청춘들이 이 거리로 몰려와 일상의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누구나 자신을 누르는 삶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법이지만 술 한잔에 고민이 한 꺼풀씩 씻겨 내려가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래, 세상만사 이거면 되는 거지, 뭐가 더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화랑거리에서 복합문화공간이 된 봉산문화거리

 


 

 

 

 

 

 

문화의 도시 대구를 자처한지 20여년, 이제 대구는 국제적 문화도시로 거듭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 시작점을 봉산문화거리에 두고 대구시는 활발한 움직임을 시도했다. 물론 그 움직임이 눈에 띠는 큰 변화를 가져오진 못했으나 분명 과거의 모습에 비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몇몇의 매니아들만 즐겨 찾던 소규모 화랑들이 이제는 가족, 친구, 연인들이 함께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연주회,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리며 문화애호가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골동품점, 고서점, 표구사 등이 자리 잡으며 심지어는 인사동 풍물거리에 견주어지기도 한다. 봉산문화거리에 자리한 화랑들은 매년 100회가 넘는 크고 작은 전시회를 개최하는데 해마다 10월이면 봉산미술제가 열리며 그 정점을 찍는다. 이 가을, 한껏 고조된 축제의 분위기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대구 전통문화의 구심점, 향교

 


 

 

 

 

 

 

 

 

문화는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우리 문화를 간직하고 후세대에 전달하는데 구심점이 되는 곳이 바로 향교이다.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으로 설립되어 지금에 까지 6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면서 유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인간된 도리를 배우고,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예의범절을 연마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실 지금의 향교는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지는 못하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도 했고, 필요에 따라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가 다시 이곳으로 옮겨오는 변화의 과정을 거쳤지만 <인의예지>라는 유교적 가르침이 흔들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주변을 오가며 보았던 향교는 항상 고요했던 것 같다. 그랬던 이곳에서 왠지 모를 부산스러움이 전해진다. 호탕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재빠른 움직임 사이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한 쌍의 예비부부를 만났다. 건장하고 늠름한 신랑의 표정에선 숨길 수 없는 기쁨의 웃음이 새어나오고, 수줍은 듯 미소를 지은 신부의 얼굴에서도 행복이 터져 나온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부가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이란 사실이다. 일면식도 모르는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에 눌러앉아 버렸다.

 

 

 

 

 

결혼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통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예식 사이에서 적잖은 실수도 나온다. 하지만 신랑신부도, 축하객도 한 마음이 되어 즐거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온 마음으로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제 골목투어의 마지막 지점 건들바위다. 도심 중심에 우뚝 서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이 바위가 조선시대 대구 10경 중 하나였단다. 바위 앞으로 냇물이 흐르며 낚시를 할 수도 있었고,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는데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름뿐인 바위이지만 골목투어 4코스의 종착지가 되면서 조금씩 사람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골목투어 4코스를 걸으며 느꼈던 가장 큰 매력은 언제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정된 프레임으로 늘 같은 모습을 지켜왔던 다른 코스들에 비해 생동감 넘치고, 누구든 참여하여 그 골목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매력이 사람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이곳으로 향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 듯하다. 그 중심에 서서 진짜 가을을 느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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