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설계는 바로 그것이었다! 절대적인 단순함이었다.”
- 렌초 피아노, <N. 실버>에서 인용,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의 '퐁피두'는 건물을 지을 당시 대통령의 이름이다(1969년 착공하여 1977년 완공, 지상 6층, 지하2층). 하지만 그것보다 이곳이 더 관심을 받는 이유는 독특한 디자인 때문이다. 외벽은 하나의 건물이 완공되었다고 하기 보다는 건물을 짓기 위한 뼈대만을 형성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마티스, 칸딘스키, 몬드리안, 피카소, 미로, 앤디 워홀과 같은 현대 미술의 거장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무료로 무선인터넷도 사용가능하다.
<골목 끝에 모습을 드러낸 퐁피두센터>
그래서인가 더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스트라빈스키 분수>
퐁피두센터의 낯익은 건물을 보고 달려왔는데 그 보다 먼저 분수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분수 자체가 또 하나의 상설 전시가 된다. 어찌 저런 원색으로 색칠할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색깔이 강렬하다. 지금까지 파리에서 본 것들 가운데서 가장 자기 색을 잘 드러낸 곳이 이 곳 스트라빈스키 분수와 퐁피두센터인 것 같다. 이 곳에 있는 조형물들이 서로 너무나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각자의 개성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현대사회가 가진 어두운 측면을 간과하지 않은... 억지 해석을 한번 해본다. ^^ 의미야 어찌됐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곳이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스트라빈스키 조형물들 1>
많은 조형물들 가운데서 내 맘에 젤로 좋았던 입술과 높은 음자리표. 내 맘을 어찌알았는데 나란히 사진찍기 너무나 좋은 각도에서 나를 반겨준다. 그걸 온전히 담지 못하는 내 솜씨가 아쉬울 뿐... 그리고 분수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지 못한 아쉬움?
<스트라빈스키 조형물들 2>
인어다~. 근데 내가 상상하던 아름다운 모습의 인어가 아니다. 어릴 적 라디오 동화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인어의 모습을 상상했건만 그 모습이 아니다. 후훗~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지만 지금 이순간은 어린 시절 동심을 간직한 내가 좋다. 이 연못주변 어딘가에 분수를 움직이는 손잡이가 있을 것 같고,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분수가 노래하면서 움직일 것만 같다. ^^
<퐁피두와 차 한잔>
퐁피두 건물을 중심으로 주변으로는 많은 카페들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이 곳에서 향이 찐한 에스프레소를 한잔하면서 분수와 음악을 즐기는 것도 꽤나 낭만적일 것 같지만 지금 나는 마음이 급하다. 시간은 짧고, 보고 싶은 것들은 많고... 무엇을 선택할까 오락가락하며 결정도 못하겠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주일만 파리에서 꼬박 보낼 수 있다면 향이 짙은 커피 한잔도 좋으련만.
기다려라... 내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뼈만 남은 건물>
사람으로 친다면... 뼈만 남은 사람? 아니다. 내장 기관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 상상하려니 더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만 할란다. 발칙한 발상이 세상 사람들의 허를 찔렀다. 그런 걸 보면 세상에 안되는 일이란건 없는 것 같다. 이전엔 누가 감히 이런 것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아니, 생각이 있다하더라도 어찌 실제로 형상화시킬 생각을 했겠는가. 용기가 있는 자만이 창조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고, 그에 따라오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으리라. 내부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을 버림으로 퐁피두는 실용성과 예술성, 창의성 모두를 획득했다. 이로인해 뉴욕과 런던으로 넘어가고 있던 '예술도시'의 인식을 파리는 다시 지켜냈다.
<정면>
이 건물에서 맘에 드는 것은 빨간 밑바탕으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의 모습이다. 투명한 건물 외벽과 빨간색의 조화도 참으로 이채롭다. 루브르의 피라미드를 만들고 오르세 미술관을 개조했던 미테랑 대통령도 이 퐁피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한 사람의 뛰어난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건축물도 대단하지만 그 대단함을 알아차리고 보다 한발짝 나갈 수 있는 인재들의 통찰력이 프랑스라는 나라가 현대사회에서 빠질 수 없는 선진국으로 꼽히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퐁피두 주변의 기념품 상점들>
주일이라 이곳도 어김없이 휴업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주일을 지키다니... 주일을 철저하게 이렇게 휴업이다. 어김없이 이곳도 주일이라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쇼핑이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때가 주말인데 말이다. 하기야 이 분들도 여가를 즐겨야겠지. 같은 상점인데도 양벽을 사이로 분위기를 이렇게 다르게 연출하다니, 이곳 사람들은 모두다 예술적 경향이 높은가보다. 안에 들어가서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을 자꾸만 발길을 잡는다.
음... 그림 솜씨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이 건물을 스케치하는 것도 참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퐁피두 반대편 까페>
어딜가나 만날 수 있는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 난 여유롭게 휴가로 이곳을 찾아왔는데 어찌 그들보다 여유롭지 못한 것일까. 역쉬~ 뭐니뭐니해도 마음이 여유로워야 한다. 마음이 바빠지면 있는 그대로를 완전히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이럴땐 몸과 맘이 따로 노는 내가... 불쌍하다. ㅋㅋ 동심같아 좋댔다가 불쌍하댔다가... 맘이 하루에도 몇 번은 바뀐다.
<퐁피두 근처의 극장>
지금은 프랑스 영화가 예전에 비해 맥을 못추고 있지만 내가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프랑스영화하면 '예술영화'라고 많은 사람들이 인식했다. 흥행과 재미를 추구하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영화가 끝난 후에도 뭔가모를 여운을 남기는 그런 예술성을 짙게 담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그래서 간혹 프랑스영화는 졸리기도 하지만 끝까지 보고나면 '해냈다'라는 생각으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게도 했다. 퐁네프의 연인도 그 때 내가 봤었던 프랑스 영화의 하나이다. 어색한 프랑스어와 색다른 생김새의 배우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야릇한 느낌을 주던 영화의 배경과 색채들... 지금은 그때 그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프랑스영화가 변한 탓도 있겠고, 내가 변한 탓도 있겠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의 탓도 있겠고. 프랑스영화가 침체된 이유 중 하나가 스크린쿼터와 관련되어 있단 말도 들은 적 있다.그래서 우리나라 스크린 쿼터 축소를 이야기하면서 프랑스와 빗대어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만큼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 나로서는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우리 영화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한번쯤은 필요하다. 자생력도 중요하지만 대중매체인 만큼 이를 따라주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니 요즘 선전하고 있는 한국 영화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나도 빨리 국가대표 보러가야겠다. ^^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이제는 퐁피두도 떠난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게될지, 아니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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