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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마을 이야기(Japan)/나가사키(長崎)성지순례

[나가사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성당-오우라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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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라 성당 전경>

우라성당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성당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정식명칭이 26성인 순교자 성당이다. 이 곳이 처음 생겼을 때 나가사키 주민들은 이 곳을 '프랑스절'이라 불렀단다. 물론 지금있는 건물은 원폭투하후 무너진 성당건물을 재건한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가 높아 일본의 보물로 보호받고 있다.  

이 곳은 프랑스 신부님이 만들었는데 그 신부님이 우라카미의 숨어있는 기리시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본에 기리시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가사키로와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성당을 지어놓으면 숨어있는 기리시탄들이 하나 둘 찾아오리라 생각했는데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님은 기리시탄을 찾기 위해 나가사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성가를 부르기도 하고 신부라는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썼으나 신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산타마리아'가 있다는 소문이 조금씩 퍼지고, 어느날 한 여인이 신부님을 찾아와 '우리는 당신과 같은 마음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반복해서 물으니 그 여인이 '산타마리아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신부님은 기리시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성당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당신이 찾는 산타마리아가 이것입니다.'하고 성모상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기리시탄을 찾아내기 위해 가짜 기리시탄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 외국인이 자신들을 돌보아줄 수 있는 사제인지를 다시한번 확인하기 위해 또 질문했다. '당신은 결혼을 했습니까?' 신부님은 '나는 가톨릭 사제로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했고 마지막으로 그 여인은 '파파(교황님)를 아십니까?'라고 묻자 신부님은 '우리 사제는 주교님의 파견으로 이 곳으로 오지만 교황님을 받들고 있다.'고 대답했고 그 이후엔 경계를 풀고 우라카미에 신자들이 있고 당신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이렇게 기리시탄들과 신부의 만남은 250여년 전 순교한 한 선교사가 죽기 전 '7대 후에 배를 타고 외국인이 들어와 신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과 같이 이루어진 것이다. 정말 250년이 넘게 지나 서양 선박이 사제를 태우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신자들은 200년-300년 가량 기다린 사제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으나 다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박해의 시작으로... 하지만 그들의 만남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고 해도 서로에게 큰 기쁨과 감동이었을 것이다.

 
이 신자 부활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일본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계속해서 들어오던 이야기였다. 그 만큼 일본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겠지.

  

<오우라 성당 앞마당>

이 곳에 교황님이 오셨다는 기념으로 교황님 흉상이 있다.

 

<오우라 성당 마당의 벽화>

신부님과 숨은 기리시탄들의 만남. 일명 신자 부활사건을 벽화로 표현한 것이다. 신부님이 기리시탄들에게 성모상(산타마리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신학교와 현재 성전>

성당 입구에서 오른쪽으로는 예전의 신학교가, 앞쪽으로는 신오우라성당이 있다. 이곳이 너무나 유명해져 바로 옆에 신오우라 성당을 만들었다. 기와가 얹어진 곳이 예전 신학교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성당 소제대>

성당 양편으로 자리하고 있는 소제대들. 대표적인 목조성당이라는 명성에 맞게 제대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정면 제대>

성당 전체모습이다. 유일하게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는 신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성당이다. 그래서 마구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나도 이 곳에서 순례를 위해 기도. 

 

  

<성당을 나와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당 입구를 나와 왼쪽으로 돌아가면 박물관이 나온다. 그리고 나가사키의 유명 관광지인 그라바 공원도 이 길을 통해 갈 수가 있다. 그라바 공원이 있는 언덕으로 가면 일본에서도 알아준다는 멋진 나가사키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우라 성당 오른쪽에 있는 예전 신학교를 지금은 가톨릭 자료실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도 국보급 문화재라고 한다. 교실로 쓰기엔 많이 좁아보이는 공간들을 시대별로 구분하여 여러가지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참 볼거리가 많았는데 후덥지근한 날씨와 빡빡한 일정에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사진을 찍을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기념이 될만한 몇 가지만...

  

<각종 성물들>

쪽 사진은 앞쪽은 일본전통종교와 관련된 무늬로, 뒤쪽엔 십자가로 되어있다. 신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자신의 가문 뿐만 아니라 동네에 있는 다른 집들까지 피해를 당할 수 있어 기리시탄들은 이렇게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나갔다. 왼쪽은 후미애에 사용했던 성화이다.

 

본 박해시대에 가톨릭 신자를 색출하기 위한 3가지 방편이 있었는데 하나는 신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현상금과 포상금을 주는 것이다. 그 포상금이 어마어마한데 신부님, 수녀님, 일반 신자 등급을 나누어 주는데 신부님 한분만으로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큼의 포상금이라 했다(우리는 신부님 한분과 수녀님 두분이 함께했으니 더 엄청나다고...).

두번째는 5가작통법인데 5가구를 하나로 묶어 서로 감시하도록 만든 것이다. 일본의 이것을 도입하여 조선시대에도 사용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후미애이다. 후미애는 예수님 성화나 성모님 성화를 땅 위에 놓고 그것을 밟고 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밟고 가는 것으로 배교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후미애에 대한 것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책에 잘 묘사되어 있다.

 

<마리아 관음상>

본의 기리시탄들은 박해를 피해 숨으면서 관음상에 십자가나 다른 가톨릭의 상징을 숨겨두면서 신앙을 지켜나갔다고 한다. 사진에서보면 관음상의 나무문에 십자가가 보인다. 어떤 관음상은 소매부분에 아주 작은 십자가를 새겨놓기도 했다. 마지막 방에 있었던 신부님(나폴레옹의 직속신하의 아들)의 성화판화를 한컷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나가사키의 혹독한(?) 날씨에 너무 시달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너무 후덥지근하여 힘들었다. ^^;

 

<오우라 성당과 신학교, 신오우라 성당>


 

기서부터 나가사키 관광 핵심들이 줄지어 있다. 물론 나는 오우라 성당밖에 보지 못했지만. 근 6시가 가까워지자 성당 문을 닫는다. 저녁 6시에 문을 닫는 성당... 관광지라 그런가? 성당은 언제나 열려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내 생각이 이 곳에서 또 혼란스러워진다.

 


 

<오우라 성당과 관광지로 가는 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우라 성당이 나온다. 관광지들의 집합을 보여주듯 올라가는 길에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한눈에 잡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장식품 상점들이 즐비하다. 이 곳에 눈길을 빼앗겨버리면 관광지 방문이라는 목적을 잃을 수도 있다. 늘 그렇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혼란스러워해야 한다. 내려오면서 봐야지... 했는데 내려올 땐 이미 문을 닫고 있었다. 오른쪽은 동화책 박물관이란다. 역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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