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양식의 '성모 마리아'성당으로 이 역시 루브르와 함께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파리에는 노틀담성당이 이곳말고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일컫는 노틀담성당 또는 노틀담사원은 이곳이다. 1163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근200년이 흐른 1330년 완공되었다. 과거에는 프랑스의 유명 왕들과 귀족들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행해졌고, 현대에는 국가의 중요한 사안들이 이곳에서 행해져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노틀담성당을 유명하게 한 것은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곱추]때문일 것이다. 어찌됐건 프랑스 상징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세느강>
루브르에서 콩코드로 향하지 않고 옆으로 빠지면 바로 프랑스 또하나의 상징 세느강이 나온다. 어느 도시건 강을 따라 발달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강이 도시의 상징이 되는 경우는 흔하다. 서울의 한강이 그렇고, 체코의 블타바강이 그렇고, 이곳 세느강이 그렇다. 세느강은 32개의 다리도 빼놓을 수 없다.
<퐁 데 자르 다리와 프랑스 아카데미 연구원>
유일한 도보 다리라는데... 이리로 지나가진 않았고 이 곳에서 세느강을 더욱 가까이 즐기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해가 지지 않는다. 유럽여행은 참으로 여름이 제격이다.
<세느강변>
세느강변의 양쪽 보행자거리는 젊은이들의 자유의 거리다. 자유롭게 악기연주를 하기도 하고, 맥주와 포도주를 들고 나와 피크닉을 즐기기도 하고, 공연들과 서로 다른 놀이들의 즐기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될 일들이 여기선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이곳에서 자리깔고 할 수 있는게 없나... 하는 생각으로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게 없다. 이때까지 뭐하면서 살았는지... 구역에 따라 살짝 악취가 나는 곳도 있지만 여행을 망칠만큼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
<퐁 네프 다리>
[퐁 네프의 연인]이란 영화로 유명해진 다리이다. 내가 중학교때 이 영화가 개봉했는데 그땐 프랑스 영화가 너무 난해하게 느껴져 크게 기억은 안나지만 장면장면이 끊어진 필름처럼 떠오르긴 한다. 지금도 퐁 네프의 많은 연인들이 다리 위를 오간다. 이름과 다르게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란다. 하지만 전혀 오래된 다리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잘 관리된 덕분이겠지.
한참을 걸었다. 이번엔 정말 한참을 걸은 것 같다. 그제야 나타나는 노틀담성당.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조각상.
<노틀담성당 앞 조각상>
<노틀담 성당의 정면>
이제는 놀라움의 표현도 의미가 없을 듯하다. 도대체 어디서 놀라야하고, 입을 다물어야할지 도저히 갸늠할 수가 없다. 흐리다 맑았다가 반복하더니 이곳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프랑스에서 본 하늘 중 가장 맑고 아름답다. 최후의 심판 문 중앙에 예수님을 중심으로 12제가가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엔 28명의 유대왕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 중앙이 노트르담에서 놓쳐서는 안될 장미창이다. 저기 꼭대기엔 괴물모양의 낙수대가 있다. [노틀담 드 파리] 뮤지컬에서 무대장식의 핵심이 되었던 그 괴물말이다. 성당 입구가 어찌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는 이유는 옛날 라틴어를 사용하던 그 시절, 일반 신자들(그땐 신자라는 개념도 필요없었을 듯하다)은 어려운 라틴어를 알 수 없어 조각이나 성화를 통해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생활의 지침 등을 알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되었단다. 어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없었다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도 누릴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담 저 조각상들을 보고 신앙심을 키워나가던 과거 사람들과 같았겠지.
괴물 낙수대를 확대한 사진. 너무 쪼그맣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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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Zoom In>
프랑스 최초의 순교자 성 드니 주교가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있다. 로마인들이 파리를 기독교화하려하자 드니 주교는 이를 저지했고, 결국 몽마르트 언덕에서 참수를 당했다. 그런데 참수를 당한 드니 주교가 흰 피를 흘리며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북쪽으로 한참을 가다가 다시 쓰러졌단다. 그를 기념해서 성당 조각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조각상처럼 천사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겠지?
고딕양식이라하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고딕양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파리는 동유럽에서 느꼈던 유럽의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첫 여행이라서 인가, 아직까지 내게는 동유럽의 향기가 더 많이 남아있고, 지금도 그 향기에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동유럽의 고딕양식 성당들이 날카로움으로 긴장을 많이 느끼게했다면 이 곳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그렇다고 이곳이 날카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파리의 다른지역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는 제로 포인트이다. 중앙에 있는 해(?)가 많이 닳아있다. 그 이유인 즉은 이것을 밟으면 파리를 다시 찾게된다는 속설때문이다.
내가 이 곳에 도착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다시피 했었다. 물론 나도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혹시나 살짝 밟으면 속설의 마법이 듣지 않을까봐 쾅쾅 밟아주었다. 다시 올수 있는 이유 한가지가 더 생긴 셈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 한 가족이 함께 이곳을 찾아 다시 올 수 있는 이유를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낙수대는 괴물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들은 성경에서 언급되는 악마라고 한다. 그런데 중간에 사람처럼 보이는 낙수대가 있다. 석공들이 악독한 신부의 모습을 만들어놓았다고 해서 처음엔 이것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이건 사람의 모양이다.
찾았다! 사각형 사진의 오른쪽이 그 신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걸 확대한 것이 원모양 사진이다. 지팡이를 쥐고 모자를 쓰고 있는 신부의 모습이다. 악명높은 사제의 모습을 악마들 가운데 끼워넣다... 후훗~ 이 사실을 그 사제는 알고 세상을 떴을까? 자신이 모른다해도 이제는 이렇게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후세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드니 주교와 참 대비적이다. 어떤 형태로든 남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잘 살아야하는 것이다.
노틀담 곱추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일까? 한 구석에 콰지모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고 하더니 정말이다. 너무나 구석에 숨어있어서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듯 하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성당을 지은지가 엄청 오래됐으니 후에 만들어진 조각이겠지. 숨어서 에스메랄다를 바라보는 콰지모도의 말못할 사랑의 테마가 들리는 것만 같다.
춤을 쳐요 에스메랄다~ 노래해요 에스메랄다~
함께 갈 수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아~
콰지모도의 사랑이 에스메랄다를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까지 전해졌나보다. 거의 황폐화되어 없어질 뻔했던 노틀담이 이 소설이 유명해지면서 다시 수리도 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고 하니.
요한 23세 교황님을 기념하면서 만든 광장이 노틀담성당 뒤편에 있다. 노틀담의 거대함에 놀란 사람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앞쪽 입구보다 사람들이 훨씬 적었으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무료 화장실이 있다는 거다. 이런 자료는 알아두면 상당히 쓸만하다. 휴식도 취하고 볼일도 보고... 후훗~
이제 뉘엇뉘엇 해가 진다. 성모상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노틀담은 이곳에서 보는 모습이 더 멋있는 것 같다. 앞쪽에서는 볼 수 없는 플라잉 버틀리스도 화려함에 한 몫을 한다. 플라잉 버틀리스는 종탑과 조각상이 주는 하중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돕는단다. 노틀담이 화려한 스테인글라스로 장식될 수 있던 것도 이것 덕분이라고...
<요한 23세 광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여기선 장미의 창이 잘 보인다.
프랑스의 공원인데 꼭 우리나라의 씨름장 같은 모래사장이 있다. 이건 어디에 쓰는 건가? 아이들이 놀기엔 참 좋은 곳이다.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파리의 연인들...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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